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순천효천고등학교 야구부 (문단 편집) == 연혁 == 원래 순천에는 1980년대 순천상고[* 현 순천효산고. 이 학교에서 배출한 가장 유명한 선수는 [[조웅천]], [[강태원(야구선수)|강태원]]이다.] 야구부가 있었지만, 별다른 족적없이 사라졌다. 그 뒤 1994년 효천고등학교가 야구부를 창설했는데 재단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재정 걱정 없이 야구를 하며 성장세를 이어나갔다. 초창기 효천고의 틀을 잡은 인물은 [[장호연]]이었다. 장호연은 효천고에 1996년과 1997년 단 2년을 재직했을 뿐이지만[* 1996년에는 아직 프로 출신들의 아마야구 지도자 진출이 허용되지 않았기에 정식 감독은 아니었다.], 키 190cm의 장신 [[강철민]]을 지역 내 손꼽히는 우완 정통파로 만들었고, 단신의 [[조용준]]에게는 슬라이더를 가르쳐 대학을 거쳐 최고의 마무리가 되도록 만들었다. 비록 이 두 사람이 있던 시절에는 전국대회 결승과 인연이 멀었지만, 또 하나의 야구계의 기인 [[한희민]]이 만든 작품 [[정성기]]가 에이스로 활약한 1998년 황금사자기에서 창단 첫 결승에 오르는데 성공했다. 비록 정성기가 결승에서 무너지면서 준우승에 그쳤지만[*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고]]에 0-13으로 패배했다. 이 날 대구상고의 [[용덕한]]은 2점홈런을 쳤다.] 분명한 성과였다. 그리고 2000년에는 타선의 짜임새를 바탕으로 봉황대기 결승에 올라 다시금 우승을 노렸지만, [[김진우(1983)|김진우]]가 이끄는 [[진흥고등학교 야구부|광주진흥고]]에게 지면서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2002년에는 고교 최고의 포수인 이성열과 준수한 타자였던 [[김준호(야구)|김준호]][* 홈으로 달려다가다 꽈당한 것으로 유명한 그 선수 맞다], 투수 [[김이슬(야구선수)|김이슬]]-윤성길[* 효천고 졸업 후 성균관대와 LG에서 선수생활을 했고, 성균관대 투수코치로 오랜 기간동안 활동 중이다.]-양동혁을 앞세워 봉황대기 4강에 올랐고, 2003년 당대 최고의 고교 투수였던 [[김수화]]를 필두로 [[김선규(야구)|김선규]]-[[양지훈]]이 받치는 마운드로 대통령배 4강과 청룡기 준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아쉬웠던 것은 청룡기 결승전으로 [[광주동성고등학교 야구부|광주동성고]]를 상대로 7회까지 9-2로 앞섰지만, 지칠대로 지친 김수화가 결국 8회부터 무너지면서 연장 10회에 구원 투수 김선규가 동성고 포수 명정주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으며 우승을 할 수 있던 절호의 찬스를 내줬다.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sh&no=2770560|2002년 당시 로스터]] 김수화가 졸업한 후로 효천고는 전국대회에서 4강에 입상한 적은 없다. 그러나 효천고 출신 선수들이 기본기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우수한 인재들이 꾸준히 배출되며 학교의 이름을 계속 알리고 있다. 2019년 말에 20년 넘게 팀을 이끌어 오던 서창기 감독이 물러나고[* 감독과 야구부장을 겸직하였으며 사임 후 [[홍익대학교 야구부]] 코치로 이동하였다.] 정진(정성기)이 새 감독으로 부임했다. 코칭스태프는 이승종 코치와 김지민 코치, 투수 코치 김민욱 코치로 구성하였다가 2020년 말에 이승종 코치가 부산과학기술대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타격코치로 김영복 코치가 새로 선임되었고 2021년에 투수코치가 교체 될 예정이다. 2021년 청룡기에서 우승후보인 세광고를 16강에서 3-2로 힘겹게 물리치고 8강에 진출했으나 마산용마고에 패했다. 2022년부터 클럽팀으로 전환하여 순천효천고BC 이름으로 운영중이다.[[https://www.mhnse.com/news/articleView.html?idxno=107098|#]] 봉황대기 32강전에 진출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